2008년 07월 23일
[Dark Knight]

(물론 스포일러 가득....)
먼저 여기서 영화를 보는 사회 환경 ;;; 에 대해서 잠깐 한마디.
같이 영화를 보는 친구들의 부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직장에서 알게 된 동료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찌어찌하다 알게 된 주로 시내 (the city 쿨럭)에 사는 인간들이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전자는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 선호파들이고, 후자는 어떻게 생각하면 약간 재수 없는 스놉 취향들인데 이것도 사실 아직 완전히 파악이 끝난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전자와 같이 [10,000B.C.]나 [심슨 가족] 영화판 같은 것을 보는 동안 후자와 [마이클 클레이튼]이나 [The Savages] 같은 영화를 보러 다니게 된다. 후자의 인간들이 보는 영화들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뉴욕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나, 아니면 뉴욕 안에서만 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 가령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 프로파간다 에니매이션에 대한 영화제 같은 게 있으면 꼭 가봐 줘야 된다 ;;; - 이 아니면 거의 보질 않는다. 이게 정말 황당하긴 한데 본인들은 또 나름 진지한지라 아직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판단 보류중이라는. 얼마 전에 모님과 오페라 관객의 autheticity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영화 관람에서 그것을 추구하는 그룹들이라 하겠다. 뭐 그렇다고 꼭 예술 관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것도 아니라는 게 좀 신기하긴 하다. 하긴 예술 관계 종사자들이라면 이렇게 좁디 좁은 영화 취향을 유지하면서 산다는 게 불가능하겠지. 그러니까, 그런 와중에 정말 내가 보고 싶었던 [There will be blood]나 [No country for old men] 같은 영화는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T.T
그래서 물론 [Dark Knight]는 예상하셨겠지만 직장 동료와 같이 보러 간 영화이다. 하도 이거 꼭 봐야 된다고 성화를 하길래 따라갔다고나 할까. 당연히 이 영화의 배경은 ‘고담 시티’ 이지 ‘빅 애플’이 아니니까 ㅎㅎ 아마 근래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관객이 많고 집중도도 높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기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줄서서 영화 입장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정말 처음 봤으니까. 이 근처를 배경으로 했던 [Sex and the City] - 는 그러나 직장 동료들과 암 생각 없이 본 영화 ;;; - 때도 이 정도의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는 기립 박수가 나왔고.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해서 굉장히 극사실주의적이다. 전작인 [Batman Begins]와 비교해서도 그렇고, 90년대 등장했던 말도 안 되는 발 킬머나 조지 클루니가 배트맨으로 나왔던 영화들이나, 팀 버튼의 스타일리스틱한 고담 시티를 배경으로 한 배트맨 시리즈들에 비교해 봐도, ‘이거 정말 같은 영화 시리즈라고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2005년에 나온 [Batman Begins]의 몇몇 등장인물과 배경을 재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령 고담 시티만 해도 그 영화에서 인공적인 도시의 느낌을 주던 디자인이나 구조 같은 것은 전혀 나오지 않고, 여기서 고담 시티는 그냥 ‘시카고’다. 그러니까 [Batman Begins]에 나왔던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가 건설했다는 시내를 관통하는 열차나, 도시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범죄의 온상이 되는 슬럼가 같은 것은 전혀 등장하지도 않는다. 아런 애커트가 지역 검사로 나오는 부분들은 그냥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범죄 영화이고, 크리스천 베일이 홍콩에서 활약하는 장면들은 그가 배트맨 수트를 입고 있을 뿐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점점 과도하게 스타일만을 강조하면서, CG로 떡칠을 하는 다른 코믹 북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과 다른, 투박하고 거칠면서 생생한 ‘현실의 감각’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트맨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일부분이 오토바이로 변신한다거나 핸드폰이 발신하는 음파를 이용해서 공간을 재구성하는 기술 같은 건 ‘저건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뭐 워낙 요즘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걸 따라가는 건 포기했고 - 아이폰 사용법을 모른다니까;;; - 혹시 어디선가 이미 웬 미치광이 억만장자가 정말 그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영화가 꽤 긴 편인데 - 여기서 거의 2,30분을 줄창 틀어대는 예고편까지 합치면 거의 3시간 가까이 극장에 앉아 있다 나온 셈이다 - 지루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만큼 플롯이 잘 짜여져 있고 극적 개연성 역시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카고 - 아니 참 고담 시티 ;;; -에서 가장 잘 나가던 지역 검사가 ‘투 페이스’로 바뀌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어디 한 군데 더하고 뺄 것 없이 훌륭했고, 그래서 이 역을 이 영화에서만 소모시켜 버리는 것은 확실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런 애커트의 연기가 특히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서 더 그랬다고나 할까. 아무튼 여기서 투 페이스는 말도 안 되는 권력과 힘을 과시하는 코미디에 가까운 그런 악당이 절대 아니고, 그가 행사하는 폭력도 딱 적당한 만큼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토미 리 존스가 다시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싶어할 듯한 이전의 투 페이스와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 반대로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치광이임을 영화 내내 강조하려고 애썼던 조커의 경우, 그 부분에 약간 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면이 없지 않긴 하지만, 역시 히스 레저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이었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팀 버튼이 만든 1편의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시 그의 탁월한 해석을 누가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 만하기도 한데, 히스 레저는 그와는 또 전혀 다른 방향에서 거의 같은 정도 혹은 그를 능가하는 설득력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괴물’을 창조해냈다. 정말 이 배우를 다시 스크린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아쉬운지. 섣부른 추측이긴 하지만 - 그리고 언론에서 그런 정황을 지나치게 극화해서 묘사하긴 했지만 - 역할이 배우를 잡아먹어 버린 게 정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이미 죽어버린 배우가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무시무시한 괴물-악마를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확실히 섬뜩한 경험이었다. 이게 정말 영화 역사상 보기 드물게 코믹 북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그것도 악당 연기로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배우가 죽어버렸으니 뭐....쩝.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크리스천 베일은 2005년 [Batman Begins] 에서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었는데, 그게 또 꽤 타당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배트맨이 아무리 돈이 억수로 많고 주위에 훌륭한 조력자들이 둘러싸고 있고 무술로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는 다른 수퍼 히어로들과 달리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인 것이다. 3년 내내 고담 시티를 지키느라 밤새 돌아다녔다면 그렇게 핼쑥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배트맨 연기를 하면서 지나치게 해소 천식이 걸린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좀 웃기다고 생각되긴 했지만;;; 그 외에는 뭐 무난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굳이 레이첼 역할을 매기 질렌할로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녀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고, 특히 하비 덴트와 마지막에 전화로 서로 통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근데 정말로 궁금한 거 하나. 왜 배트맨이 레이첼이 아니라 하비를 구하러 갔을까? 혹시 조커는 그들의 위치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인가? 여기서 분명 배트맨과 고든 형사가 향하고 있는 장소의 주소를 대사로 언급하고 있었기는 한데, 좀 헷갈려서 ;;;;)


그 밖의 조연들, 뭐 그럭저럭 자기 역할들을 해 낸다. 마이클 케인과 모건 프리먼은 2005년 때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집사 역할을 사이좋게 나눠 가지고 있고 - 특히 모건 프리먼이 배트맨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협박하는 놈과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화하는 장면은 짧지만 ‘저래서 대 배우구나’하는 생각이 확 들게 했다는 - 악당 마로니 역을 맡은 에릭 로버츠도 제 몫을 해 냈다고 본다. 게리 올드먼이 연기하는 고든 형사 역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2005년 작을 볼 때 게리 올드먼의 연기 전력들을 생각하면서 ‘저 놈은 분명 형사로 분장한 악당이다’라고 계속 예상했었건만, 웬걸 배트맨 자신보다 더 착한 놈인 것이다 ;;; 사실 아직도 게리 올드먼이 이 생활고에 찌들고 피곤 가득한 형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이게 생각해 보면 엄청난 연기 변신인데 말이죠)
아마도 일련의 수퍼 히어로 영화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영화는 일종의 ‘터닝 포인트’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수퍼 히어로 영화들이 이런 접근 방식은 쉽지 않을 것이고, 배트맨 시리즈 자체도 다시 이 만큼의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팀 버튼이 마이클 키튼, 데니 드 비토 그리고 미셸 파이퍼를 데리고 찍은 걸작 영화 다음에 나온 그야말로 수 천만 달러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영화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말이다. 그럼 영화사에 길이 남을 DC 원작의 걸작으로 남을 것인가? 그 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팀 버튼이 만든 전작 두 편에 필적할 자리매김을 할 것은 분명하겠지만.
p.s.: 요즘 어딜 가나 이 영화 관련 광고들이 넘쳐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도미노 피자 광고.
p.s. 2: 어제 뉴스를 보니 크리스천 베일이 어머니와 누나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일단 무혐의로 풀려났다는데, 그럼 혐의는 없었다고 치고 가족들이 왜 베일을 신고한건지? 이거 좀 심난한 뉴스다. 설마 노이즈 광고는 아니겠지? -_-
# by | 2008/07/23 13:52 | 영화들/드라마들 | 트랙백 | 덧글(7)


